김애란4 김애란, 스스로를 위한 솔직함 글을 쓰다 보면 펜 끝이, 이 말은 어폐가 있는데 자판을 치면서 펜이라 합니다^^, 마치 스케이트 날 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문장이 완성되려면 주어 다음엔 술어부가 이어져야 하는 것처럼 마땅히 써야 하는 어떤 것으로 몰리게 됩니다. 기실 글을 쓰면서 마음에 문장을 완성하고 쓰는 게 아니라 펜 끝이 문장의 다음 단어라는 징검다리로 점프하는 느낌입니다. 그렇기에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사심 들여 사실 보다 미화시키거나 극적인 효과를 위해 기술이 들어가면 글 자체가 일그러지게 됩니다. 경험이 진짜로 납득되면서 재미까지 있으려면 아무리 황당하거나 부끄러운 이야기라 하더라도 솔직하다는 인상을 줘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난 번에 김애란의 글이 솔직하게 써 내려갔다 말 했었지요. 최근의 인터뷰에서 김.. 2024. 2. 8. 김애란과 지그문트 바우만 내면의 탐색을 생략했을 때 해석의 여유와 자유를 줌과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들추기 싫은 자신의 내면을 만나게 만드는 날카로움이 함께 있었습니다. 최윤의 몇 작품들은 그래서 좋았습니다. 이어서 김애란의 작품들을 읽는데 책을 읽고 자란 세대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읽다 보면 편집작가의 가위질이나 감독의 컷 사인이 들리는 듯한 그런 글을 구사하더군요. 아울러 단어를 구슬리고 희롱하는 유희를 능수능란하고 천연덕스레 벌입니다. 소설이라는 쇼 무대에서 MC를 맡아 좌중의 시선을 포로로 삼아버리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사진의 맨 위 책부터 연대 순으로 읽는 중입니다. 도도한 인생이나 침이 고인다 같은 작품에서 청각과 미각을 동원해서 문학적 관능을 자극합니다. 목수가 목재의 모양과 재질을 살피듯 단어를 툭툭 쳐보.. 2024. 2. 3. 김애란, 달려라 아비 外 달려라 아비;기다림과 이차 의견으로 합성한 아버지 이 소설은 아픈 내용이건만 주인공은 신음 하나 내뱉지 않는 의연한, 아직 젖망울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소녀입니다. 아이는 외할아버지와 어머니와의 관계로부터 끊어도 끊어지지 않는 관계의 비밀을 염탐하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를 내내 달리며 멀어져만 가는 형상으로 상정합니다. 기다림의 노력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멀어지기 때문에, 깊어지는 그리움의 고통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바꿉니다. 어느 때 스스로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때가 되어야만 그제서야 모든 것이 비로소 이해된다는 것, 제 멋대로 달리게 만들었으면서 달리는 아버지의 입장을 헤아려볼 여유마저 생긴다는 것, 쫓아가 죽여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 도망가는 아버지를 상정하던.. 2024. 1. 23. 김애란, 스카이 콩콩; 진부한 판타지와 가부장제의 몰락 혤리혜성이 지나간 때는 1986년입니다. 김애란 작가가 80년생이니 그가 6살 때(이전에는 7살 때지만, 마찬가지로 취학 전) 일인데. 물론 혤리혜성이 지나간 일 말입니다. 스카이 콩콩은 독특한 분위기였지만 2005년이면 작가가 25살 무렵이고 지금부터도 19년 전입니다. 비슷한 느낌적 느낌을 내려는 웹툰에 많이 오염되었을까, 진부하고 식상한 독특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첫인상은 시시껄렁하고 실망스러웠지만 그럴 수 있다 누구나, 너는 이런 글이나 써봤느냐 하는 준엄한 소리가 내면으로부터 들려왔습니다. 적어도 제가 이해 못 한 것으로 치고 넘어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만취한 아버지는 집에 오는 길에 주인집 개가 단지 '짖는다'는 이유로, 스카이 콩콩을 들어 그 개를 정말 개패듯 팼고, 다음 날 .. 2024. 1. 2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