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칸느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작으로 채택됐다는 영화, 처음 틀자마자 두 세 마디의 내레이션과 화면이 엇박자 나는 것 보면서 "졸면 안 돼!"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거 돌려 말하는 거잖아, 만일 칸느에서 상이라도 줬다가는 감독은 더 이상 영화를 못 만들게 될지도 모르는, 마치 프차에서 직설했다가는 징계받는 것처럼.
그런 게 있죠. 그런 상황이, 그런 나라가 있죠. 뭔가를 말하기 전에 자기 검열을 해야 하는 뭐라도 말했다가는 누구처럼 될 수 있다는 본보기가 너무 많고 사소한 것조차도 감시당하고 있다는 두려움의 강박이 일상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는 그런 상황, 그런 나라. 우리나라는 그럴 리 없죠, 정말? 자신할 수 있나?
중국의 경우 횡단보도 무단횡단 하면 신분증과 연결된 무슨 점수가 깎인다죠. 이미 그들은 입이 있어도 말을 하면 안 되는 그런 상태 아닌가요. 2018년 영화 지구 최후의 밤은 정게에 써야 할 이야기를 심하게 돌려 말해서 프차에 쓰는 행위와 다르지 않았고 정치적 댓글 3개면 분란글 작성으로 징계받을 수 있는 처지가 되지 않도록 칸느의 심사위원들은 꾹 참아야 했습니다. 아니면 영화가 너무 심하게 돌려 말했기에 심사위원들의 안목이 영화의 메시지를 구체화할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한 범위가가 너무 넓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계속 더 영화를 만들 수 있게 살아남았길요, 중국의 봄을 기다리면서요.
이런 영화는 거하게 잠 자고 일어나서 잊는 게 제일 좋죠. 현재의 삶을 결정지을 중요한 과거사에 대한 내레이션이 과거와 현실의 순서를 착각하게 합니다. 오직 주인공의 얼굴이 나와서 시간적 배경이 현재인지 과거인지 알 수 있습니다. 몽환을 유발하는 감독의 이 선택은 쉬운 콘텍스트를 바라는 관객에게는 짜증요소일 수 있지만 대사에 나오는 것처럼 유체이탈을 경험하고 싶다면 판단하지 말고 그냥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졸리지만 않다면 몽롱한 내레이션과 시선이 초점을 맞추는 정확한 포인트를 뭉개거나 화면전환하는 촬영과 편집기술을 이겨내면서 추상화 보듯 관람하는 초인적인 감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나름대로의 메타 메모리를 총동원해서 문맥을 맞춰보는 작업을 해보는 겁니다.
여기서 관객에 따라 해석이 갈립니다. 감시당국은 직설을 좋아합니다. 통과. 일반관객은 직설을 좋아합니다. 통과(잤다눙^^) 눈꺼풀에 받침대 걸고 씬바이씬 의미를 찾는 것과 별개로 영화의 앞뒤 맥락을 자신의 내러티브에 맞추는 감상을 하게 된다면 감독과 어디선가 만나는 것입니다.
감독은 이렇다고 말한 적도 없고 그걸 알아주기도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뭔가를 전달하려고 영화라는 형식을 이용했고 그가 써 내려간 영화적 문법은 마치 난수표 같습니다. 해석이 달라도 그 맥락이 일정하다면 관객도 감독도 윈윈 하는 것입니다. 강박의 원흉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되죠.
6하원칙에 의한 재구성이 불가능하면서도 뭔가 상징하는 것을 이어붙이는 것이 꿈 해석의 영역이라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을 때 이건 꿈이다 라고 말해서 이야기 자체를 붕괴시킨 다음에 그 잔해를 뒤지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는 것, 이것이 구조를 해체하고 그 무너진 구성물에서 본질을 발견하는 과정 아니겠습니까.
검열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 해체된 구조에서 본질을 발견하는 현자들은 검열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이 B급들의 지배하에 바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것이죠.
직설로 이야기할 수 없어 관객을 고문하는 이런 영화를 만들 수 밖에 없는 감독의 고충을 이해하지만 한국은 아직 그들이 개척한 표현의 자유를 향유하고 있으며 그 결과 기생충과 미나리와 서울의 봄이 있기에 어쩌면 이런 영화는 암호문 같은 고대의 탁본해석을 즐긴다면 모를까, 생산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선균 배우를 추모하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는 죽음으로 한국 영화의 퇴보 저지선을 지켰습니다. 결과적으로 만인의 입막음을 위한 본보기가 되기보다는 저항의지를 보여주고 결백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평안하시길.
현실적인 압력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말하지 못할 때 예술이 어떻게 일그러질 수 있는지 반면교사한다면 현재 우리가 가진 것을 지키려는 각오를 다시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처지가 낫다고 느끼게 하지는 않습니다. 언제든지 그런 처지에 서있다는 것을 자각만 하면, 어느 새 폐허의 '그 집' '망가진 시계가 있는 그 집', '비가 내리면 물이 차서 수영장이 되는 그 집'이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영화는 꿈을 이야기하는 현실이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하게 나오고 관객이 꿈이라고 생각한 부분 속에서 다시 꿈임을 확인합니다. 피안과 차안이 상대적으로 스스로의 현실을 부정합니다. 꿈속에서 꿈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현실 부정이고 현실 속에서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현실 부정입니다. 어쨌든 우리 관점에서는 고양이가 타이핑했다거나 주어 없다는 표현과 등치 하는 영화입니다. 중국의 현실은 우리처럼 단문으로 웃고 넘길 수준이 아닌 만큼 심각하고 절망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탕웨이에게 과연 설명을 하며 연기를 요구했을까요? 탕웨이에게는 정말 힘든 작업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졸면 안돼! 하고 일어났지만 이런 영화는 관객이 맥락을 재구성하는 숙제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반갑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영화를 통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범위를 확대하고 새로 개척한 그 세계관 바깥의 황무지를 거닐며 나름 고양시킨 정신세계를 즐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죠.
먹물들의 악취미라고 욕먹을지언정 말하지 못하게 재갈을 채우면 채울수록 돌려 말하는 기술 또한 세련돼지는 세상이치를 서로 눈치채야죠. 철석같은 체제라도 언제라도 두부처럼 흐물거릴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영화는 대략 이러하니 영화는 즐길거리이고 즐기지 못하면 집어치우면 됩니다. 영화가 투쟁의 불씨를 보존하는 저장고로 쓰이는 곳이 지구상에 있다면 그곳이 적어도 우리나라는 아니니까요.
나름대로 영화 보면서 떠오르는 생각 무작위로 내 맘대로 써 내려가고 마무리 없이 마무리하렵니다.
영화에서 신비의 여인이라는 테마는 아무리 PC개념을 들이부어도 바꿀 수 없는 것이죠. 승리의 여신이라는 것도 그렇고 운명의 여신이라는 것도 있고, 아무튼 탕웨이는 중국 인민이 그렇게 갈망하는 무엇이고 같이 떠나고 싶은 무엇이며 제발 내 곁에 있으면 하는 무엇이지만 또 딱히 무엇이라고 정의하지 않습니다. 모르는 여인을 도피시키는 장면 압권이죠.
이 영화의 실마리는 시계입니다. 시계는 영원을 상징한다고 나오면서 늘 망가진 상태입니다. 꿈속의 날짜나 현실에서 추억하는 날짜 모두 동지입니다. 12월 22일은 중국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시안사건이 있던 날입니다. 이 날의 일만 없었다면 중국 공산당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중국의 인민에게 역사의 변곡점이 되는 날이어서 내내 가슴 아린 날일 겁니다. 마치 우리에게 반민특위가 해체되던 날이 역사의 아픈 곳이듯이요.
하지만 동지라는 날을 꼭 그 날을 특정하지 않기에 앞 뒤 맥락에서 설명되지 않습니다. 우연히라고 퉁치기에 좋을 정도입니다. 마치 '족구 하라 그래' 외치고 족구공을 던져주듯 말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로테스크한 현실을 만화경 같은 꿈속 현실, 현실 속 꿈에 골고루 넣어놨습니다. 탁구채를 가슴에 소중히 품은 소년과 탁구를 잘 치면 날아갈 수 있다던가(귀화) 사과를 길 한가득 흘리는 장면을 보면 아이폰을 만들고 있는 폭스콘이 연상되기도 하고 아이폰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이중적인 감정도 느껴집니다. 상징과 풍자 투성이의 이 영화를 그런 것 찾으면서 열광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그저 시안사건에 대한 통한의 변을 이리도 길게 써놨나 싶고 우리가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 우리는 잘하고 있나 돌아보게 합니다.
다만, 인과관계를 철저히 증거인멸한 이 자기검열의 끝판왕 같은 이 영화를, 혼자 당하기엔 분하기에 글 올리니 연말연시 잘 보내시고 새해에 소원성취하시길 인과관계없이 기원합니다.
Azami jo No Lullaby -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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