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다음~
제목의 다음은 이럴 때의 '다음'입니다.
최윤 작가가 1994년에 이상문학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당시의 작품평이 어떠했을지 모르나 이 작품을 2024년에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이 작품은 한국의 문학정서를 앞질러 갔으며 영악(칭찬^^)스럽게도 소설 의미 구조 분석이라는 논문을 통해 비평가로 먼저 등단했던 작가가 당시 환경에서 작품을 쓸 때 수상권 근접 레시피까지 염두에 두고 집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그러니까 여성 시점이었으면 직설적인 82년생 김지영 같았을 것이며 당시 환경에 택도 없었을 테니까요. 잘 모르겠다는 순진한 것 같은 일반 남성의 잘 모르겠는 눌변 같은 문장들은 읽을 때는 그 너머에 마주 앉은 하나코의 시선과 등 돌려 멀어져 간 장진자를 찾아 더듬게 만들고, 나중에 완성형으로 직면하는 (여성들이나 느꼈을) 통쾌함을 94년에는 뜻밖이라 봤을 테니까요.
마치 하나코가 이태리에서 여자끼리 가정을 이루고 함께 직업적으로도 성공해 한국 시장에 진출한다는 요약을 위해, 그래야만 했던 과정을 피의자 진술을 통해 설명하듯 말입니다.
편하고 순응하고 들어주며 요구하지 않는 코만 예쁜 것이 아니라 코도 예뻤던 그 여인을 모두가 사모하고 그리워하지만 누구의 말이든지 차분히 들어주는 자세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장진자, 그녀를 모두가 탐했던 진실을, 작가는 애써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려는 남성들의 회고성 잡담으로 구성하면서 여성의 자리가 없던 90년대의 실상을 고발한 것 같습니다.
딸 같아서 그러지, 네가 예뻐서 그래 등 말 몇 마디면 무마가 됐던 행위들이 엄연했던 시절, 여성평등도 수입자유화 품목에 포함됐을 것 같이 서세동점의 형태로 적용됐던 나라에서 남자들의 왜 그랬는지 모를 것 같은 기분은 아마도 지금 이대남들의 심정과 다르지 않았을 것인데 최윤 작가님은 그것을 94년에 써두셨으니...
하나코에게 일대일 데이트를 하면서도 박대했던 이유를 모르겠으면서도 불편함이 남아 있는 이유는 그 평등함이 난공불락으로 다가왔기 때문이겠죠. 똑똑한 여자가 불편한 것은 그런 생각이 드는 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죠. 다만, 악의 평범성처럼 불평등의 평범함을 남자들은 공기처럼 내쉬기에 평등한 것이 내내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겁했던 수컷들이 일탈의 순간에 집단의 폭력을 발산하는 모습은, 외지에서 친구와 함께 밤길을 걸어간 하나코가 외국으로 나갈 수 밖에 없는 국내의 환경을 에둘러 말한 모습이라고 봤습니다. 이 작품은 여성이 쓴 남성 시점의 내러티브 속에 여성 쪽 진실을 여백 속에 두면서 시대적 전형인 집단적으로 드러난 남성 쪽의 편향적이며 아전인수격 나르시시즘을 넘겨짚어서 작성해야 하는 집필 상의 어려움이 있기에 개인적인 예외나 개인 간의 아름다움을 포함한 내용이 담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페미적 카프문학 장르라고 할 수 있겠죠.
똑똑한 여성들이 경단녀로 늙어가야 하는 시대적 지리적 상황,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하나코는 없었던 90년대의 상황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음을 여러 사회정황으로 느낍니다. 30년 전과 지금의 격차라면 사회 일반의 정서가 지금 같을 수는 없는데 유독 후불제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페미니즘 또한 외상구매로 급히 들어온 터라 정착하고 이해되며 구현되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대한민국 21세기 하나코들은 오늘도 외국으로 나가야겠죠.
"설마 결혼식 같은 것을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그렇게 날 몰라요?'
- 스코베니회사 소속, 인테리어 디자이너, 장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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