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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느끼기

최윤, 회색 눈사람; 작은 빛을 남기며 아프게 사라진 모든 사람을 기억하며

by 그랬군요 2024. 1. 19.

회색 눈사람을 검색했더니 시험대비 분석자료 같은 것이 나옵니다. 회색 눈사람이 국어시험 출제도 됐던 모양이니 늦은 감상에 빠졌다가 시험지를 앞에 둔 것처럼 당황스럽기도 하고 으레의 후일담과는 차별되는 점이 느껴졌던 터라 시험출제 대상이 됐던 것이 납득이 되기도 합니다.

 

1953년 생인 최윤 작가가 72년부터 78년까지 대학/대학원 생활을 했던 것으로 봐서 한국 정치사 중 새벽이 오기 전 가장 어두움 속 한국을 경험했고 그 경험이 작품에 투영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79년 YH사건과 10.26과 12.12로 이어지는 시대의 격변이 일어나기 전에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돌아왔고 회색 눈사람은 1992년 제23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므로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발표한 1988년과 1992년 사이에 회색 눈사람을 집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78년 2월 21일 동일방직 똥물 사건, 당시 시대상의 단면이 어땠나 체감하기에 좋은 뉴스입니다.

https://namu.wiki/w/%EB%8F%99%EC%9D%BC%EB%B0%A9%EC%A7%81%20%EB%98%A5%EB%AC%BC%20%EC%82%AC%EA%B1%B4

 

1988년과 1992년 사이의 기간 또한 여러 정치적 격변과 문화적 열병과 가치관의 혼란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팽배했던 시기입니다. 1985년에 발표됐던 강석경의 '숲속의 방'이 영화로 개봉한 것도 1992년이었습니다. 후일담이라는 통칭에 숲속의 방도 회색눈사람도 포함되었지만 당시 '숲속의 방'은....할말하않.

 

이후 후일담 부류의 작품은 읽지도 쳐다보지도 않았고 오히려 문학작품 일체에 손대지 않게 된, 젊은 날의 독서열에 찬물을 끼얹었던 사회적 경향 중 하나였습니다. 그랬기에 1992년도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회색 눈사람을 2024년에 읽게 됐습니다.

 

회색 눈사람을 읽기 전에 얼굴을 비울 때까지(2021)와 소유의 문법(2020)을 읽었습니다. 30년이라는 세월의 격차를 두고 시대 상이 변한 만큼 글의 행간으로 구성되는 세계가 역시 많이 변했습니다. 세 작품 모두 회고 형식이나 최근 두 작품은 모두 가뭄 속 천수답 같이 비 내리기를 바라는 결말로 끝맺음합니다. 

 

그만큼 현재는 확고한 진영의식이 있던 30년 전과는 다릅니다. 30년 전 작품 회색 눈사람에서는 작품 말미의 결론처럼 희망에 희망을 타서 희망을 연장하고 강화하며 각자의 마음속에 상처와도 같은 작은 빛으로 남긴 아프게 사라진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는 정도라면 최근에는 어떻게든 사이다 결론이 일어납니다. 

 

최근 작품은 희망의 불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개연성 있는 구조도 보여주지 않지만 사필귀정식 결론이 아니라 결론에 처해진 상황으로 말미암아 그간의 가치판단을 가늠하게 됩니다. 이건 두고 보자는 식이죠.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시대정신 아닐까 합니다. 두고 보자.

 

왜 회색 눈사람인지 읽으면서 궁금했습니다. 회색인이라는 제목이 염두에 떠오르면서 그런 의미일까 의심도 했지만 회색 눈사람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글 제목 "가난이라는 소외의 탈 역사적 경향에 대한 반성"과도 궤를 같이 합니다. 

 

이탈리아 사학자가 독일어로 쓴 역사책을 번역한다는 것은 세 나라 말의 소통을 도모하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 가난한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며 가난한 자는 역사성에서 조차도 소외당한다는 자의식이 있었음을 작가는 돌리고 돌려서 정당화합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못할 만큼, 어쩌면 알아줄지도 모를 그런 고백 같은 것, 열심히 살았고 목격했고 기록했다면 나쁘지 않은 역사 참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눈과 연탄재가 섞인 가난의 상징이기도 하고 주인공 자신이기도 하며 그 눈사람에게 목도리를 둘러 주는 장면은 자신과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자각하는 이 소설의 정점이었습니다. 회색 눈사람은 서러운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탈 역사적 경향을 반성한 자의 조그만 몸짓이랄까 그래서 서러운 기쁨으로 읽혔습니다.

 

 미약한 햇살마저 판자 벽을 슬쩍 벗어나 있었고, 그런 응달에서 볼이 튼 어린아이들이 재와 흙으로 범벅이 된 회색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이 몸통을 만들고 둥근 얼굴을 얹고 그 위에 돌조각으로 눈을 만들어 붙이고 입을 만드는 것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중략) 아이들이 눈사람을 다 끝내고 쉰 목소리로 만족의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내 목을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벗어, 멋진 나무젓가락 콧수염을 단 회색의 눈사람의 목에 감아 주었다. 조개탄을 아껴 써야 했던 어느 저녁, 안이 오바 주머니에서 꺼내 목을 둘러 주었던 목도리였다. 

 

지금쯤은 우리라고 불러도 좋겠다느니 그들의 견해와는 다르게 이 단어를 쓰기로 한다느니 하면서 우리라는 단어 앞에서 여전히 수줍고 불편함을 겪는 것을 자문하지만 당시를 지나온 모든 한국의 젊은이들이 나누어 짊어진 부채의식의 다른 표현임을 지금 사람들은 잘 모를 것입니다.

 

오히려 어떤 부분은 최근 불행하게 세상을 뜬 배우를 연상시키는 문구가 되기도 합니다. 참여문학도 후일담도 아닌 그 이상의 경계에 위치한 이 작품의 생명력은 여기에 있습니다. 최근 두 작품에서 '그런 것으로 죽지는 않는다'라더니 회색 눈사람에서는 '죽을 것 같았다'가 나옵니다. 30년 전의 죽을 것 같은 시대를 관통하고 살아남아 2000년대에 나름 다르지 않은 어려움 속에서 '그런 것으로 죽지는 않는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칠흑 같은 독재에 맞서던 투쟁의 주변부에서 가난과 외로움과 부채의식의 혼재로부터 유체이탈해 살아남은 자의 회고로 읽히면서도 솔직한 반성이기에 현재성 또한 가진다고 읽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우울을 짊어져 쪼그라든 나의 마른 체구? 그것은 나의 시선 저 깊숙이 숨겨져 있는 갈구의 빛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위 문장에서 떠오른 이미지입니다.

 

여전히 아프게 사라진 사람이 작은 빛이 되는 세상이기에 더 잘 읽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