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 느끼기

최윤, 얼굴을 비울 때까지/ 소유의 문법

by 그랬군요 2024. 1. 19.

최윤, 얼굴을 비울 때까지/ 후기와 뜻밖의 수확

 

최윤 작가의 단편, <얼굴을 비울 때까지>를 천천히 읽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소한 설정오류 하나를 찾았습니다. 2021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에 기수상작가 자선작으로 실려 있는데 흠을 먼저 말한 것은 작품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입니다. 

 

초상화가인 화자가 초상화가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 젊은 시절 인연과 초상화와 사람 간의 심리를 고찰한 내용이 주인데, 70세가 넘은 작가님의 연세를 고려할 때 최근에 쓴 것이라면 한 번에 써 내려간 작품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7페이지 분량을 단번에 썼을 수도 있고 끊었다 썼어도 몇 번 쉬지 않고 썼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작가님들의 집필 속도가 어떤지를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마는.

 

최윤의 문장은 차곡차곡 쌓다가 꺾기가 들어갑니다. 등장인물 중에 우영우와 비슷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비하자면 이 작품은 몇 줄만 가지고도 읽는 사람의 세상을 보는 눈의 진로를 홱 틀어버립니다. 문학의 역할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응원하고 있게 됩니다. 

 

초상화가의 초상화와 모델 간의 이야기를 편히 읽어도 되지만 독자는 읽으면서 세상의 모든 관계의 이치를 갖다 들이대도 웬만하면 맞아 떨어집니다. 거침없는 심상을 적은 작품이기에 짧은 시간에 써 내렸다고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저는 최윤 작가가 초상화 그리기를 통해 글쓰기를 환유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작가가 평생 작업한 경험을 짧고 가볍지만 경험을 통해 느낀 바를 초상화에 비유했다는 생각입니다. 초상화는 풍자도, 극사실주의 묘사도, 왜곡도, 과장도 가능한 '글쓰기'와 닮은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21회 이효석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소유의 문법>을 또 천천히 읽어볼까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묘사한 문학작품들이 이 작품처럼 '글쓰기'의 환유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화사(김동인)나 금시조(이문열)가 얼른 생각이 났죠. 아니었습니다. 즉흥적인 생각과 오래된 기억으로 인한 착각이었습니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5347

https://ko.wikipedia.org/wiki/%EA%B8%88%EC%8B%9C%EC%A1%B0_(%EC%86%8C%EC%84%A4)

 

저를 이끈 검색결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금시조를 불어로 번역한 사람이 최윤 작가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료를 찾은 곳은 한국문학번역원이란 곳이었습니다.

 

최윤 작가님 작품을 감상하다가 한국문학번역원을 알게 되었고 회원가입했으며

https://www.ltikorea.or.kr/kr/main.do

 

한국문학번역원 전자도서관이 있어서 번역된 한국 작품을 빌려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https://library.ltikorea.or.kr/

 

다들 알고 계셨고 그랬군요만 여태 모르던 정보였던 것이죠? ㅎ

 

탐욕연대의 해체, 최윤 '소유의 문법'

 

소유의 문법도 30페이지 좀 넘는 단편이라 자려고 누웠다가 다 읽어버렸습니다. 최윤 작품을 읽는 재미는 주 스토리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담백한 작가의 사유입니다. 딱 제 스타일이네요.

 

소유의 문법을 얼굴을 비울 때까지 보다 먼저 썼거나 같이 구상했다가 떼어서 독립된 작품이 됐나 봅니다. 화가, 자폐아, 소리 지르는 증상, 자폐아에 대한 사회적 이해, 세상을 관찰하는 눈 등이 겹치네요. 이어서 읽은 저로서는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어서 편했습니다. 허세와 가식이 없고 세상을 보는 따뜻하고 중립적이지만 확고한 인간미가 있는 글, 최윤의 글은 제게 그렇게 보였습니다.

 

시골 전원주택의 삶의 낭만과 드러나는 실상과의 괴리와 은밀한 연대와 물밑거래 속에 방기 되는 양심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더니 초현실 혹은 신비주의에 기대어 사이다로 마무리합니다. 각박한 현실이 던전 버전이라고 할 때 이런 정도라도 허용되어야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현실에서의 극복은 더 냉정한 시각과 투철한 의지와 실천의 각오가 있어야겠지만 담담한 작가님의 필치가 은근하고 굳건해서 자칫 염세와 포기로 흐르려는 마음을 다잡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