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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타고 보고 먹고 걷고 듣고 마시고

by 그랬군요 2024. 1. 6.

나는 놈 위에 드론이 있는 세상입니다.^^

 
비행기에서 봤던 영화 'Barbie'스러운 핑크톤인 리스본의 바다일출을 조용히 감상하려던 애초의 작정과 다른 전개로 펼쳐진 아침 산책, 생각지 못했던 사람을 예상치 못했던 과정으로 만나 조용한 아침에 열띤 대화를 하는 상황 속에 있음을 자각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엠 (이전 글 '기대 밖의 만남들' 참조)에게 말했죠 알아들었거나 말거나.
야, 이거 우리 트립 투~ 시리즈 영화 같지 않냐?
 
흐흐 지금 생각해 보니 백퍼 못 알아들었겠습니다. 현실감각이 떨어져서 일상에서 디피 댓글 달듯 했었네요. 디피에서야 수많은 사람 중에 그 영화 압니다! 하고 누군가 대댓글을 달게 되겠지만 일상 속 특정 대화상대에게 예비 질문이나 설명 없이 영화 이야기 이렇게 툭 던지는 버릇 고쳐야 할 텐데요^^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여행 연작 영화들 중 '트립 투 이탈리아'를 첫 유럽 여행(파리/피렌체/로마/마르세유/메네르베) 전에 보고 또 스페인(마드리드/세비야/그라나다) 가기 전에 '트립 투 스페인'을 봤으며 유시민의 유럽 기행 그리스 편을 읽으며 '트립 투 그리스'를 봤었죠. 처음의 신선함이 가시면 매너리즘에 빠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의 대화로 가득 찬 버디무비 성격이 되니 기대를 하면 실망을 하게 되는 '탈 여행' 콘셉트의 여행제목 영화입니다. 그래도 잠시의 풍경스케치나 멋진 레스토랑이 나오긴 합니다.
 
일출을 보려 나섰다가 이역만리타국에서 한국 관련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방인의 입술만 바라보고 있으니 당연 일련의 이 영화들 보던 '때'가 생각날 수밖에요. 

 
엠과 빠이빠이하고 잠시 방에 와서 대화의 여운을 가라앉히고 나서 다시 우리 일정 소화를 시작했습니다. 호텔을 나서면 앞으로 옆으로 아치형 회랑이 보입니다. 빨려 들어가는 구도로 언제라도 사진 찍는 사람과 그 앵글 속 보행자와의 눈치싸움이 계속됩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아직 휑하네요.

 
햇빛이 비끼는 시각이라 밤잠 덜 깬 거리와 눈부신 오렌지빛 벽이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버스를 타고 출근하느라 바쁜 로컬 리스본 사람들에 섞여 제로니모 수도원으로 향했습니다. 무표정한 사람들, 관광객과는 전혀 다른 차림새, 동시대이면서도 독특해 보이는 포르투갈 일반 복색과 시끄럽지만 알아들을 수 없어 거슬리지 않는 포르투갈 말로 통화하는 소리를 들으며 차창밖을 감상했습니다.
 
제로니모 수도원입니다. 예약을 했었지만 리스보아 카드로 무료입장이 되더군요. 

 

 
긴 줄 뒤에 서서 줌 놀이를 하다가 리스보아카드 보유자는 따로 줄이 있어서 금방 들어갔습니다.

 

 

 

 

 
아침 9시 30분에 들어갔는데요. 제로니모 수도원은 아치로 시작해서 아치로 끝납니다. 아치가 아름다운 시각은 햇빛이 사선인 구간입니다. 직접 간접으로 빛이 마법을 부리는 시간이었습니다. 

  

 

 

  

 

 

 

 
항상 느끼는 건데 빛이 마술을 부리는 시간에 그것을 예상치 못하고 맞닥뜨려서 흥분하고 그 빛에 같이 까불리고 지나서는 아 이렇게 찍어볼걸 그랬네 하는 후회성 감탄이 듭니다. 사진이 그래서 게으른 제게는 좋아하면서도 재미없는 취미입니다. 글은 언제든지 다시 와서 고칠 수 있는데 사진은 포착과 기록이고 돌이키지 못합니다. 프레임 속 세계를 창출하는 것과 별도로 시간과 빛을 계산해야 하는 다분히 과학적 마인드가 있어야 되죠. 차라리 회화와 사진은 전혀 다른 차원의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도원을 나오니 옆 건물인 Iglesia de Santa María de Belén 성당 보수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 거대한 인공축조물을 처음에 지을 당시에도 저렇게 작업했겠지요.

 
제로니모수도원을 구경하고 성당은 건너뛰고 찾은 곳은 100미터 정도 거리에 있는 에그타르트로 유명한 곳입니다. Pasteis de belem이라는 곳인데 아침 이른 시각인데도 제로니모수도원을 형식적으로 보고 나온 사람들과 이곳을 오늘 첫 일정으로 삼은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었습니다. 염불보다는 잿밥^^
 
https://pasteisdebelem.pt/en/
 
스트릿뷰 보니까 줄이 어마어마하군요.
https://www.google.com/maps/@38.6973865,-9.2032549,3a,75y,330.65h,90t/data=!3m7!1e1!3m5!1sjJkiY4-f-b0zMk5NGcnM6g!2e0!6shttps:%2F%2Fstreetviewpixels-pa.googleapis.com%2Fv1%2Fthumbnail%3Fpanoid%3DjJkiY4-f-b0zMk5NGcnM6g%26cb_client%3Dmaps_sv.tactile.gps%26w%3D203%26h%3D100%26yaw%3D336.30804%26pitch%3D0%26thumbfov%3D100!7i16384!8i8192?entry=ttu
 
줄만 긴 게 아니라 건물 안에서도 길게 이어진 줄을 두 번 꺾어가며 따라가서야 주문대 앞에 설 수 있더군요. 도중에 타일벽을 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느끼시는 것 있으세요? 사방연속무늬가 아니고 똑같은 그림이 하나도 없습니다. 토끼나 사람이나 꽃이나 비슷한 그림을 봐도 미세하게 모두 다릅니다. 수작업으로 하나씩 그렸다는 이야기죠. 하단의 가로지른 나뭇잎 문양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붕어빵도 똑같은 거 하나 없긴 합니다만.

 
그림에 있는 패킷 하나 시켰습니다. 

 
메뉴에 밑줄 친 다른 하나는 Toicino do Ceu라고 존 버거가 Here is Where We Meet에서 언급한 건데요. 원 이름은 Toucinho do Ceu였었네요. 존 버거도 이방인이라 디저트 이름의 정확한 스펠링은 몰랐었나 봐요. 맛집 메뉴 사진만 찍어뒀다가 글에 올리려고 보니 이 메뉴가 있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책에서 읽고 기억했다가 포르투의 한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주문해서 먹었는데요. 존 버거가 왜 좋아했는지 모를 맛이었거든요. 맛집에서 따뜻한 상태로 먹었으면 또 달랐겠지요.

We walked in the direction of the Chiado and, suddenly, on the spur of the moment, I found myself entering a baker’s to ask whether they had a dessert, a kind of custard flan with almonds called Bacon from Heaven. It’s sweet, tastes like marzipan and has nothing to do with bacon. Toicino do Céu. My mother stayed outside. Yes, they do. I bought two portions and the baker’s wife made a gift package with a ribbon, the colour of the Sea of Straw. I stepped out into the street.

It’s what I like best. How on earth did you know? she asks me in her seventeen-year-old voice. Every afternoon I have a Toicino do Céu, she added.

우리는 치아도 방향으로 걷다가 갑자기 순간적으로 빵집에 들어가서 하늘에서 온 베이컨이라는 아몬드가 들어간 일종의 커스터드 플란 디저트가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달콤하고 마지팬 맛이 나는데 베이컨과는 전혀 상관없는 디저트였어요. 토이치노 두 세우. 엄마는 밖에서 기다렸죠. 네, 있었어요. 나는 두 조각을 샀고 제빵사의 아내는 바대색 밀짚 리본으로 선물 패키지를 만들었습니다. 나는 거리로 나섰습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도대체 어떻게 알았어? 엄마는 열일곱 살 같은 목소리로 제게 물었습니다. 매일 오후에 토이치노 두 세우를 먹었지, 엄마는 덧붙였어요.

 

(뒤에 한 번 더 언급됩니다)

It occurred to me that I should have offered her some Toicino do Céu. She would have eaten them absentmindedly while working on her computer.

문득 그녀에게 토이치노 두 세우를 권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컴퓨터 작업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먹어치웠을 것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35213 
 
뜨끈뜨끈한 에그타르트, 여행 통틀어 이 에그타르트가 가장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여행에서 돌아와 코슷코에서 판매하는 냉동 에그타르트를 에어프라이어에 돌려서 먹었는데 이 맛 못지않게 맛있다는 겁니다. 

 
코슷코에서 팔고 있는 냉동 에그타르트, 또 사러 갈 겁니다. 에그타르트가 목적이라면 포르투갈까지 가지 않아도 됩니다.

 
타르트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주변을 돌아봅니다. 버스창을 저리 한 이유가 거리 풍광의 반영을 담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보드블럭 공사하는 모습을 봤는데 하나하나 모래 위에 놓고 망치로 두들겨 고정하고 있더군요. 저걸 다 언제 하나 싶었습니다.

 
밤에 하얀 등이 예쁘던데 아침 햇빛에도 비슷한 자태를 보여주네요.

 
안경가게인가 싶은데 지붕과 벽과 사람과 쓰레기통과 한창 리모델링 중인 내부 모습이 대조적입니다. 

 
이런저런 모습 둘러보다 보니 탈것이 왔네요. 이거슨 버스인가 트램인가.

 
다음 목적지인 MNAA(Museu Nacional de Arte Antiga 또는 National Museum of Ancient Art)앞에 내렸습니다.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합니다.

  
관광객 입장에서는 방치한 계단 옆의 풀때기들도 관광상품처럼 보입니다.

 
계단을 지나 언덕길을 좀 올라가야 하는데 아직 오전이라 한가하게 개 산책이나 조깅하는 주민들을 지나쳐서 도착한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입구 모습입니다. 

 
부조를 당겨 봤습니다.  

 
이곳 역시 리스보아 카드로 무료입장입니다. 로비에서 자원봉사자를 만나 가구전시장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서툰 영어인지 아시안 맞춤영어인지 모르나 자원봉사자에게 깊이 있는 설명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그랬더라도 못 알아들었겠죠. 포르투갈 익스팬션을 자 언급하더군요. 포르투갈이 역사를 통틀어 대항해시대를 가장 추억하는 모습이더군요. 전 세계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익스션 시절에 수집한 거라고 말하는데 그거 다 뺏어온 거잖아요, 사 왔으려나?

 
자원봉사 아줌마와 헤어져 다른 전시관으로 이동하기 전 햇빛 드는 휴게실 모습입니다.

 
전시관을 다니는데 딱히 볼 게 없어 당황했습니다. 라파엘 등 유명 작품이 몇 개 있다고 해서 뱅뱅 돌며 찾았습니다.

 
와중에 지옥입니다. 중세에 지옥을 현실화했을 모습들이 저게 상상속 그만이 아님을 알기에 현재에 사는 행복감이 잠시 들었습니다. 상상하고 저지르는 것은 과학 분야만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포르투갈 회화에서는 이 주제가 드물지만, 그 구성의 의미는 중세 이후부터 전통적인 것이었다. 오른쪽 상단에는 죄수들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고 중앙에는 한 무리의 참회자들이 끓는 가마솥 안에 앉아 있고 그 가운데 두 명의 수도사(또 다른 두 명은 그림에 등장)가 있는데, 이는 누구도 지옥으로의 추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이 인물 주변에는 다른 죄인들이 자신의 죄에 따라 형벌을 받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의 가장 큰 참신함은 브라질 인디언이 착용하는 것과 유사한 머리 장식과 깃털 의상을 입고 아프리카 왕좌에 앉아 있는 루시퍼와 함께 예술가가 악마와 유럽 밖의 세계를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그의 손에는 베냉의 호른이 들려 있었다.

구글아트에서 MNAA의 전시물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artsandculture.google.com/search/entity?p=national-museum-of-ancient-art 


구경했으니 점심 먹으러 가야죠.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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