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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느끼기

김애란, 달려라 아비 外

by 그랬군요 2024. 1. 23.

달려라 아비;기다림과 이차 의견으로 합성한 아버지

이 소설은 아픈 내용이건만 주인공은 신음 하나 내뱉지 않는 의연한, 아직 젖망울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소녀입니다. 아이는 외할아버지와 어머니와의 관계로부터 끊어도 끊어지지 않는 관계의 비밀을 염탐하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를 내내 달리며 멀어져만 가는 형상으로 상정합니다. 기다림의 노력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멀어지기 때문에, 깊어지는 그리움의 고통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바꿉니다.

 

어느 때 스스로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때가 되어야만 그제서야 모든 것이 비로소 이해된다는 것, 제 멋대로 달리게 만들었으면서 달리는 아버지의 입장을 헤아려볼 여유마저 생긴다는 것, 쫓아가 죽여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 도망가는 아버지를 상정하던 질풍노도 같은 아이에서 잘 썩고 있을까라고 말하는 어머니를 이해할 만큼 커버린 아이라는 것, 독자도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책장을 덮는다는 것. 

  

너의 여름은 어떠니; 물에 빠진 사람이 잡는 것 

그만 좀 처먹어라. 이 한 줄로 여러가지를 담은 작품이었습니다. 아버지 분량이 아주 적지만 상관관계의 밑밥으로는 아주 그만입니다. 

 

뚱뚱하다던가, 머리가 나쁘다던가는 분명 매력의 요소가 될 수는 없다고 볼 때 아버지가 딸에게 하는 이 말은 내리사랑의 발로이더라도 그것 말고 소통이 없다면 억압의 형태 말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과 달리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고백받기 전에는 알아채기 어렵고 알아챈다 해도 상대의 진심을 모르겠죠. 상대의 진심을 안다고 해서 꼭 같은 마음으로 상대를 대해야 하는 부담은 없습니다. 

 

자신의 사랑은 소중합니다. 너무도 소중해서 상대가 헐값을 매겨도 그것을 가장 비싼 값이라 여깁니다. 상대의 절박함을 자신이 죽을 뻔한 경우와 비교하니 말입니다. 그제야 자신의 목숨빚과 등치 하는 것을 발견하는 반전은 읽어나가면서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짧은 서사를 가지고 깊은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는데 글이 참 솔직합니다. 

'그러나 예쁘게 비칠 만한 표정을 꾸며내는 일도 잊지 않았다'같은 문장이 희,비극을 공존시킵니다.

 

물속 골리앗; 차라리 홍수였으면 좋겠다.

'침이 고인다(2007)'를 아직 읽기 전이지만 '비행운(2012)'에 게재된' 너의 이름은 어떠니'와 '물속 골리앗'을 읽어보니 '달려라 아비(2005)'보다 많이 세련됐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속 골리앗에 대한 감상은 제목이 전부입니다. 분명히 있는 주제가 서사에 묻혀 사라지고 사라졌던 주제가 점차 뚜렷해집니다. 문장을 단순화하면서도 응축된 내용이 천연덕스럽게 툭 툭 튀어나오고 시퍼런 칼날 같은 문장이 예상치 않은 곳에서 파고 들어옵니다. 서사 자체로만 봐도 스펙터클한 드라마입니다. 

 

김애란 작가의 글을 설명하려면 중언부언 손가락 발가락이 모자라게 사변적이 됩니다. 이는 작가의 글 자체가 이미 차고 넘치게 상황과 암시와 복선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심각한 것을 심각하지 않게 쓰는 것이 자칫 습관이 될지도 모르고 그래서 그냥저냥 대중작가가 될 수도 있기에 뭔가 아쉽다는 성급한 생각이 들지만 계속 다른 작품들도 읽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읽었고 조금 더 읽어보겠습니다.